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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이 의학에 미친 영향 5가지

2차 세계 대전은 인류가 치른 전쟁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쟁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죽고 , 다치며 이들을 케어할 의학과 간호 분야가 중요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2차 대전은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인 동시에, 의학 발전에 미친 영향이 있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그 많은 영향 중 대표적인 예시 5가지를 소개해보는 포스팅입니다.

 

Key point

 

*응급의학 발전과 외과수술 발전, 화상치료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과 보급, 수혈 분야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은 정신 의학 분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2차 대전과 응급의학의 발전

2차 대전은 사망자만 약 5,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거대한 전쟁이었습니다.

 

보통 한 전쟁에서 사망자 보다 부상자가 더 많다는 걸 생각할 때 부상자는 억 단위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규모 사상자가 쏟아지자, 응급의료체계도 그에 맞게 발전했습니다.

 

다친 병사를 얼마나 빨리 수술, 치료 시설로 데려가느냐가 관건이었고, 그에 걸맞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상당한 군인의 항공운송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사례가 있습니다.

 

부상당한 군인을 항공수단으로 옮긴다는 개념은 이미 1차 대전 때도 존재했지만, 1차 대전 시기의 항공기는 너무 느려

 

폭넓게 활용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 때부터 성능이 좋아졌죠.

 

한편 2차 대전은 사막, 대륙, 평원, 오지, 대양, 섬 등 광범위한 지구의 전 지역에서 벌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부상자들을 옮기는 것 못지않게 긴급하게 쇼크부터 처치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2차 대전 영화를 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모르핀 등의 진통성 주사제가 의무병들에게 보급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모르핀은 부작용 때문에 함부로 쓰이지 않지만요.

 

아래의 웹사이트로 가시면 전쟁에 따라 발전해 온 응급의료체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e-gen.or.kr/nemc/emergency_medical_services_system.do?viewPage=history 

 

응급의료체계-역사 | E-GEN통합홈페이지

응급의료체계 응급의료체계의 역사적 배경 응급의료체계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장에서 효과적인 현장처치와 후송을 위한 노력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폴레옹의 의무

www.e-gen.or.kr

2. 감염병을 예방하는 예방 의학의 발전

태평양 전쟁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연합군과 추축군은 전염병으로 고생합니다.

 

모기와 말라리아, 정글의 풍토병은 무기로 막을 수 없었죠.

 

이에 따라 ddt 등 살충제로 모기를 미리 방역하는 사전 예방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는 미군 장병들은 다양한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예방 접종의 종류에는 장티푸스, 파상풍, 콜레라, 황열병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미국보다 형편이 좋지 못했던 일본은 예방접종에 많은 비용을 쓸 수 없었고, 그 결과는 미국보다도 비전투손실이

 

더 많았다는 것으로 입증됩니다.

 

미국이 2차 대전 당시 감염병을 줄이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노력들을 담은 웹사이트도 소개해드릴게요.

 

https://www.defense.gov/News/Feature-Stories/story/Article/2115192/medical-improvements-saved-many-lives-during-world-war-ii/

 

Medical Improvements Saved Many Lives During World War II

Battlefield medical care improved throughout the course of World War II, with advances in surgical techniques, medications and protective gear, among other innovations.

www.defense.gov

3.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 및 보급

대표적인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대량 생산되고 보급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페니실린은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아래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test.narangdesign.com/mail/msd/201603/s3.html

 

MSD뉴스레터

MSD 의학학술부 김일수 이사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피어있는 배양접시 주변에 포도상구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test.narangdesign.com

4. 수혈 및 외과수술 분야의 발전

(사진=픽사베이)

 

당연하게도 전쟁은 큰 외과적 부상을 동반합니다.

 

2차 대전은 가장 큰 규모의 전쟁답게 수많은 외과 부상자를 만든 전쟁입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횟수의 수술이 집도되었고, 인류의 외과수술 기술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2차 대전 시기 외과수술의 발전은 이전의 전쟁 보다 더 적은 절단으로도

 

병사들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참고자료:온라인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https://www.britannica.com/science/history-of-medicine/World-War-II-and-after

 

한편 화상치료 기술 역시 발전했습니다.

 

2차 대전은 수많은 화상 부상자를 만든 전쟁이었습니다. 화염방사기가 폭넓게 쓰였고, 수많은 포격과 화재가 있었기 때문이죠.

 

 

화상 이후 부상자들이 겪은 스트레스는 아픔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외형이었습니다.

 

2차 대전은 재건 성형외과 수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관련 내용이 담긴 웹사이트입니다.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8%81%EA%B5%AD%EC%9D%B8-%ED%99%98%EC%9E%90%EC%99%80-%EC%84%B1%ED%98%95%EC%99%B8%EA%B3%BC%EC%9D%98-%EB%B0%9C%EC%A0%84/

 

국내외 과학기술동향, 정책, 문화 등 과기계 이슈 정보 제공.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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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ciencetimes.co.kr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시기 혈장 수혈 기술, 알부민의 등장, 혈액관리 시스템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관련 내용입니다.

 

https://www.medifonews.com/mobile/article.html?no=129087 

 

수혈의 역사 (Ⅱ)

수혈의 역사 (Ⅱ) 혈액은행의 등장 1930년에 모스크바의 외과의사 유딘(Sergei SergeevichYudin; 1891~1954)은 심한 출혈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죽은 지 몇 시간 안 되는 사람의 몸에서 뽑은 피를 과감

www.medifonews.com

5. 정신 의학에 미친 영향

지금은 PTSD라고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약 80여 년 전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시기는 이런 인식이 대중적으로 낮았던 시기입니다.

 

2차 대전을 겪은 병사들 중 정신적 스트레스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 문제는 정신과 의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문제환자를 감금만을 추구하던 현상에서 벗어나, 통제와 치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엔 3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일단 수가 너무 많기에 이전과 같이 감금하는 접근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참전자가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의 ptsd를 겪은 것은 아니지만, 2차 대전에 직, 간접적으로 참가한 미군은 1,200만 명이 넘습니다.

 

(국내 주둔군, 군무원, 비전투원 최종 전시편성 포함.)

 

이 중 ptsd를 단 0.1%만 걸렸다 해도 1만 2천 명인데, 이 사람들을 전부 감금할 도리는 없죠.

 

*의학 사학자 에드워드 쇼터가 저술한 <정신 의학의 역사, 2009>에 따르면 이 시기는 정신의학의 과도기였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두 요인 모두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던 과도기 였다고 하네요.

 

과도기였던 만큼 과거처럼 낡은 관념(무조건 감금하자는)이 사라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

 

2차 대전으로 이전 같으면 쉬쉬하던 정신적 문제를 어느 정도 사회가 수용하는 포용력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2차 대전은 너무나 큰 규모의 전쟁이었기에, 폭넓은 사회적인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전처럼 정신 문제를 쉬쉬하기보다 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치료하는 적극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권장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미군의 경우 입영 시 심리검사 등으로 데이터를 만들어 사회적 치료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7221422001#c2b

 

누가 ‘정신병’을 만들고 누구에게 ‘낙인’을 찍었나···‘우영우’와 우리는 같은 스펙트럼

‘정신병’은 근대 자본주의의 발명품생산적 노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정신병원’에 갇혔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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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드린 사례들 외에도 2차 대전이 의학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파괴하는 전쟁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의학을 발전시켰죠.

 

슬프면서도, 역사는 이렇게 발전해 가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상적인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전쟁으로 발전하진 않아도 좋으니 이 지구에서 전쟁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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