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러의 스마트한 세상사 :)!!

한국 전쟁의 전개과정을 연표를 활용해서 타임테이블 식으로 간단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예전에 한국전쟁의 경과가 궁금했던 적이 있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연표를 찾아 한국전쟁 전개과정을 대강 요약해본 것입니다.


다시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


설명이 매우 간단하므로 주의하세요^.^


<1950년>

 

1950.6.25 북한군 남침


1950625일 새벽 38선의 북한군이 전면적으로 남침을 개시합니다. 암호명은 폭풍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북한은 이미 몇년전부터 계획적인 남침을 준비한 상태였고, 이에비해 국군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열세에 놓였습니다.

 

몇 가지 예를들면 북한군은 탱크가 있었지만, 국군은 없었고, 북한군은 전투기도 있었지만 우리는 연습용 연락기 같은 것 몇대뿐이었다고 합니다.

 

병력숫자도 거의 두배차이였다고 하네요.



(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 유적.. 과거 철원이 북한의 손아귀에 있을때 노동당사로 활용된 건물이라고 합니당)


6.26 유엔안보리, 북한군의 남침 규탄 및 중지 결의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바로 다음날 국제연합 UN에서는 북한의 남침을 비판하고 한국을 돕기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6.27 미국, 아시아 극동 해 ·공군의 한국지원 명령


미국은 신속하게 개입의사를 밝히고 아시아의 미군 극동 해군, 공군이 한국을 신속하게 지원할 것을 명령합니다.


6.28 한강교 폭파, 서울 빼앗김, UN의 대한민국 군사원조 결의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고 이내 우리는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맙니다. UN은 더 이상 북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하게 됩니다.

 

이로써 미국을 비롯한 수십여개국의 우방들이 우리나라를 군사,의료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6.29 맥아더원수, 한강방어선 시찰


그 유명한 맥아더 장군이 한강방어선을 살펴보고 한국군의 굳은 항전의지를 보고, 더욱 한국을 지원할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7. 5 미 스미스 특임대, 북한군과 최초로 교전

 

미국의 스미스 장군이 이끄는 특임대는 북한군과 조우해서 최초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스미스 특임대는 북한군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ㅠㅠ


막강한 미군이 왜졌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당시 스미스 특임대의 전차들은 주로 경전차였지만 북한군은 화력이 좋은 T34전차를 썼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7.15 이승만대통령, 한국군작전지휘권을 미군에 이양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미군에 이양합니다. 전시에 작전지휘권이 한국군과 미군 두개로 나뉘어있는거보단 미군에게 통합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당시 한국군의 작전지휘능력보단 미군의 지휘능력이 좋다고 판단한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7.20 대전 빼앗김

 

중요한 우리의 도시 대전이 마침내 북한에게 빼앗겼습니다 ㅠㅠ


8.1 8군사령관, 전 부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 명령


상황을 보다못한 미 8군사령관은 낙동강 방어선으로 병력을 집결시켜 방어선을 구축하고 반격을 도모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으로 부대들을 철수하라 명합니다.


8.31~9.8 북한군의 9월 총공세

 

한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고착화하자 다급해진 북한은 부산까지 함락시켜 한국전을 마무리짓기 위해 9월 총공세를 실시합니다.

 

다행히 다부동 전투등 여러가지 선전 끝에 이 방어선을 지키는데 성공합니다.


9.15 인천상륙작전 개시 영화나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된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됩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의 조수간만의 차나 여러가지 지형적 이유로 인천을 상륙지점으로 반대하던 부하들의 만류를 반대하고 뚝심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밀어붙여서 결국 서울수복의 발판을 마련하게됩니다


9.28 서울 수복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발판으로 우리의 수도 서울이 멋지게 탈환됩니다^^!!


10.1 국군과 유엔군 38선 돌파, 북진


그리고 내친김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북진을 개시합니다. 현재 국군의 날이 101일인 이유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10.10 국군, 원산 점령


북한의 주요도시인 원산을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10.19 국군과 유엔군, 평양 점령


국군과 유엔군은 선전끝에 북한의 수도 평양까지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10.24 유엔군 총공세 개시

내친김에 유엔군은 총공세를 개시하여 드디어 압록강에서 국군병사가 수통으로 압록강의 물을뜨는 기쁜순간도 찾아옵니다


10.25 중공군 제1차공세 개시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ㅠㅠ 수십만명의 중공군은 1차공세를 개시하여 유엔군과 국군을 후퇴시킵니다..


12.14~24 국군 유엔군, 흥남철수작전


어쩔수없이 중공군의 물량공세에 밀려 북한의 흥남에서 자유대한으로 남하하길 원하는 민간인들을 후퇴시키기위해 흥남철수작전이 벌어집니다.


유엔군은 많은 수송선을 동원해서 피난민들의 안전한 피난을 도왔습니다.


19511951.1.4 1 ·4후퇴, 서울 피탈1.14 국군 ·유엔군, 평택-삼척으로 신방어선을 정하고 철수


중공군의 많은 물량과 총공세로 인해 전투력이 깎인 국군과 유엔군은 어쩔수없이 일시적으로 서울을 포기하고 현재의 경기도 평택과 강원도 삼척을 잇는 신방어선을 설정하고 이 아래로 후퇴합니다.


3.15 국군, 서울 재탈환 및 북진


미군 벤플리트 사령관의 무시무시한 화력전으로 중공군은 숫자는 많았지만 미군의 화력과 제공권에 밀려 다시 밀려나고 국군은 서울을 탈환하고 다시 북진을 시도합니다.


6.23 소련 휴전회담 제의


결국 북한을 처음에 후원했지만 밀고밀리는 공방전을 보다못한 소련이 휴전회담을 제의하고 7.10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개시됩니다


그해 10.28 논란끝에 군사분계선 설정이 합의되는데 이것이 현재 남북한간의 지상, 해상경계선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19536.8 포로송환문제 타결


휴전협정이 몇년씩 끌린 2가지 이유는 양측의 군사분계선 문제와 포로송환에 대한 의견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산권은 포로들을 원국적에 따라 송환해야 한다고 말했고, 유엔군은 포로들의 자유의사에따라 포로가 가고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있어야한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화력과 물자에서 밀리던 공산권은 유엔군의 주장을 절충하게됩니다.


처음엔 고국행을 원하는 포로를 교환하고, 양측 대표단이 고국행을 거절하는 포로에게 찾아가 송환을 권유하고


그래도 송환을 거부하면 중립국으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포로 개인의 의사를 수용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도 중립국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7.27 휴전협정 조인


이렇게 최종적으로 휴전협정이 조인됩니다.


이렇게 정리하고나니 간단해보이지만 이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아픔을 준 사건 입니다.


전쟁없이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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