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중국이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상당합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현대의 중국을 일약 30년만에 국가 GDP 세계2위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붕괴이후 무너졌던것과 달리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남북관계와 남북경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지라
이점에 대해 알아보는 중국의 개혁개방에 관한 포스팅을 해보고자 합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반말로 진행하는 점을 좀 양해드립니다^^;;
1.서론
80년대 말 90년대 초반.. 대게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체제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었습니다.
보통 이런 나라들의 패턴을 도식화해보면 이렇습니다.
체제 모순 누적과 자본주의 국가들과 격차 심화->버틸 역량이 사라져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익숙하지 않던 시장제도를 도입 후 또 나리를 치름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일반적으로 무너졌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패턴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역시 공산주의 경제의 비효율성 들을 인정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였지만 중국은
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이 시장경제 도입 후 큰 혼란을 치렀던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문제를 덜 감수하고 세계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에는 단지 중국이 가진 인구와 자원이란 장점외에도 가진 요인들이 존재합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크게 성공했습니다. 개혁개방정책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크게 신장하였고
(세계은행의 발표에따르면 개혁개방을 처음시작할때의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 남짓이었지만 지금은 8000달러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GDP는 세계2위를 차지했으며, 외환보유고는 3조달러 정도로 세계1위 입니다.
중국은 물론 여전히 문제가 많은 국가입니다. 매년 문제가 제기되는 중국의 민주화문제와, 인권문제, 빈부격차와 복지문제 그리고 환경문제와 주변국과의 마찰등등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미세먼지 문제를 비롯해 사드제재등으로 반중감정이 심화되었지요.
하지만 상대가 미운 것과 상대가 왜성공했는지에 대한 요인은 분리해서 봐야합니다.
분명히 중국의 행동과 제도는 우리입장에서 못마땅하지만 적어도 중국은 그러한 행동과 제도로 개혁개방이후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 포스팅은 중국의 잘잘못을 왜 냉전이후 다른 공산국가들과 달리 개혁개방으로 성공하고 가파른 성장에 성공했는지에 대해 써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1>중국은 "개방"이전에 "개혁"에 치중했습니다.
등소평의 1979년 집권이래 개혁개방을 공표했던 중국은 초기 10년동안 에는 개방보다는 개혁에 치중했습니다. 소련이나 여타의 공산권 국가들이 보통 정치,경제 제도를 개혁하고, 해외에 시장을 개방하는 것을 병행했던것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비효율적이였던 집체나 인민공사(공산주의 특유의 집단생산 농장, 공장, 국영농장 등을 생각하면 됩니다.)
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농민들에게 개인경작과 생산물의 사유를 점진적으로 인정하면서 도시의 공산주의 방식의 기업,공장,직장들 역시 차근차근 구조조정하고 리모델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외국자본의 중국에 대한 투자나 접근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은 것이죠.
실제로 주식시장만해도 200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외국인이 투자할 수 있는 증권시장과 국내용 증권시장을 분리하기도 했던 것이 중국의 모습입니다.
중국은 우선 대외개방을 하기전에 충격에 견딜 수 있게끔 국내의 비효율적인 경제문제들을 어느정도 정리하고 개방을 했던 것 입니다.
급격한 개방을 택했던 소련이 관리실패로 크게 망해서 90년대 동안 혼란을 겪고 종국에 IMF 사태를 맞아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외국인 자본에게 처음부터 무리하게 시장을 개방하진 않았던 것입니다.
<2>지역적 시행과 성과 입증 후의 전국적 확대->실험과 실행의 구분
일반적으론 마치 등소평이 집권 후에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바로 중국 농촌지역의 비효율적인 집단농장 시스템을 해체하고 급격하게 개혁개방을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엔 좀 오해가 있습니다.
등소평은 우선 시범적으로 몇 개의 지역을 설정하고 이 지역에서 부터 집단농장, 국영농장들을 개개인 경작 식으로 전환해보고 성과를 본 후에 시도했습니다.
한해 한해 그 지역의 생산량 통계를 보고 타 지역과 비교해보고 과거의 생산량 통계와 시스템 변환후의 통계도 비교하는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이런 비교결과 개인경작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고 등소평은 3년 정도의 텀을 두고 개인경작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무리하게 모든 것을 바로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려도 시범지역을 선정해보고 실험한뒤 차근차근 전국으로 확대하는 식의 정책 이었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당 부분 남아있어서, 근래까지도 지방선거의 확대나, 지역 간부, 당서기, 촌서기의 선거에 대한 선거권을 확대시행함에 있어서 그것을 그때 그때 전국에서 동일하게 권리 확대를 하지 않고 시범지역을 정하고 효과를 측정한뒤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보통 중앙에서 선발하여 지역에 임명하는 성장(省長) (한국의 도지사 정도라고 봐야겠네요. 단 중국은 나라가 크기 때문에 중국의 일개성장이 가진 예산과 권력은 당연히 한국의 도지사를 아득히 추월합니다.
도 이런 식으로 몇몇 시범지역이 정해진 후 시행했습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시간이 다소 걸린다는 단점은 있지만, 하나의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때 성공과 실패 여부를 실험적으로 신중히 계산해 본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여타의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비해 부작용이 적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상하이 푸둥지구의 모습. 상하이는 중국개혁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로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3>시위나 사회혼란 불용인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개혁개방이후, 급작스러운 사회변화와 정치-경제적 변화가 맞물림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것이 시위나 정권교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중국 역시 예외일순 없었고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고 맙니다.
천안문 사태는 정치개혁파였던 호요방이 사망하자, 이를 계기로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고 빈민들의 복지, 학생들의 생활이 위협받자 베이징의 많은 학생과 지식인, 시민들이 공산당에 저항하다가 무력으로 진압당한 사건입니다.
천안문 사태는 중국정부의 실수이고 어두운 역사 입니다. 이걸 잘 했다고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태를 진압함으로서 다른 공산주의 국가처럼 중국내에는 정부나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해 정권을 전복하는 시도를 할 수 없었고, 중국 공산당은 이런 공포로 얻은 정치적 안정을 개혁개방에 쏟아부어 경제성장이란 성과를 냄으로서
중국 일반인의 불만을 덮는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등소평과 당시 중국 공산당 집권층들은 문화대혁명때 홍위병들의 시위에 하도 시달렸던 탓에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에 놀란다고 더욱 천안문사태를 강경하게 진압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지나 중국에 민주화바람이 불거나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민주적인 시도들이 확대될때 천안문 사태가 재평가 받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4>강력한 금융통제책을 통한 해외투기자본 방지
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급격한 개혁개방 과정에서 통제되지 않은 외국인 투기자본들이 러시아를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도 있습니다.
중국은 이점에 대해깊게 고민했으며,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국유기업의 매각이나 해외투자를 받음에 있어서 어느정도 제한을 걸어두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지분에 대해 여전히 남아있는 정책입니다.
현재도 중국에서 유지되고 있는중국의 어떤 기업이라도 외국인 투자가는 그 기업 지분의 49%이상을 소유할 순 없다고 합니다.
<5>끝으로
지금까지 30년동안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많은 성과를 얻어왔습니다. 그리고 위의 여러가지 요인들을 통해 개혁개방정책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 처럼 체제자체가 무너지거나 전복되는 일은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무작정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경제력이 신장된 사회는 반드시 그에 맞는 시민의 권리확대를 요구하게 되는 시점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과연 미래의 중국 지도부는 이 다가오는 도전을 막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중국의 정세는 흥미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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