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러의 스마트한 세상사 :)!!

이 포스팅은 소련이 망한 3가지 이유를 짚어보는 포스팅입니다.

 

소련은 한때 미국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2차 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국제사회에는 미-소 대결구도를 뜻하는 냉전이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체제대결에서 밀리던 소련은 1991년 해체되었습니다.

 

오늘은 소련이 몰락하게 된 계기로 평가받는 역사적인 3대 사건을 간략히 정리해보는 포스팅입니다.

 

Key point

 

*체르노빌 사건은 소련 체제에 큰 경제적, 정치적 충격을 주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젊은 세대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1980년대의 저유가 행진은 자원 수출에 의존하던 소련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1. 소련 해체의 자세한 과정


소련이 어떻게 해체되었는지 자세한 과정은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키인 나무 위키에 그 상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https://namu.wiki/w/8% EC% 9B%94%20% EC% BF% A0% EB% 8D% B0% ED%83%80

그렇기에 이 포스팅에서는 소련이 해체된 과정을 다루지 않고, 소련이 힘이 빠져 몰락하게 되는데 기여한 요인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1991년 소련이 급작스럽게 해체되었을 때 많은 서방과 민주주의 국가들은 당황했습니다. 소련이 공산주의적 모순이나,

 

내부적인 경제 침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해체를 선언할 줄은 몰랐던 것이죠.

 

소련 몰락의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가지 분석을 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소련의 몰락은 어떤 한 요인에 의해서만 급격히 무너진 게 아니라는 것이며,

 

다른 요인들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2. 체르노빌 사건의 비극


여러 가지 내부 모순을 겪던 소련 체제에 체르노빌 사고의 인명피해와 경제적 피해는 체제를 유지하기 힘든 피해를 입혔습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소련체제에 큰 인명, 경제적 피해를 주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당시 사고의 피해자 중 후유증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100% 정확한 인명피해, 경제적 피해 추산은 당시 상황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언론, 학자마다 평가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수십만 명이 피폭당하고 만단 위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피폭된 사람들은 수십만 명이며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의하면 피폭자 중 2만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장기적인 후유증 사망자 숫자나 집계 방식, 조사방법 등에 따라 10만~30만으로 추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경제적인 피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00% 정확히 체르노빌 사고가 얼마큼 경제적 피해를 주었다는 통계는

 

당시 상황상 집계도 불가능하고,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1,79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부터 2,000억 달러를 상회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체르노빌 사건이 일어났던 1980년대 중반에

 

이만한 액수는 엄청난 경제적 피해입니다. 지금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지요.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규모에 대해 잘 정리한 해외 웹사이트 링크도 함께 첨부합니다. 아래의 thebalance로 시작하는 웹사이트 링크입니다.

 

https://www.thebalance.com/chernobyl-nuclear-power-plant-disaster-economic-impact-3306335

 

The Disturbing Facts About the Chernobyl Disaster

The Chernobyl disaster cost hundreds of billions of dollars in clean up efforts, benefits to survivors, and lost economic opportunities.

www.thebalance.com

 

체르노빌 사고는 2가지 측면에서 소련 체제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인명, 경제 피해, 소련의 국제사회에 대한 대외적 위신 격감

 

체르노빌 사고가 준 인명, 경제적 피해와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소련의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엄청났습니다. 한편 소련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추락하는 계기가 됩니다.

 

*소련의 관료제와 개혁 문제

 

체르노빌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경직된 공산주의적 관료제가 가진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사건 초기 방사능 유출량에 대한 보고의 혼선, 잘못된 보고, 축소, 대응의 지연 등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최근 이 사건을 다큐 드라마화한 <체르노빌>이 당시 상황을 잘 고증, 재연했다고 평가받고 있죠. 저는 이걸 넷플릭스로 봤는데 

 

 

요샌 왓챠로 옮긴 모양이더라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시청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atcha.com/contents/share/tR2ewJW

 

체르노빌 | 왓챠

[왓챠 익스클루시브] 1986년 4월 26일, 소련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정부는 방사능 피해 사실을 은폐하며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사고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

watcha.com

체르노빌 사건이 보여준 관료제적 병폐는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던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더는 급진적인 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위기감을 줍니다.

 

그 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다 소련 내부의 반대파 충돌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실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체르노빌 사건이 소련에 준 충격은 매우 컸던 것입니다. 

 

3.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여파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은 10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소련은 수만 명의 전사자,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소련-아프간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공산주의 세력과 무자헤딘 간의 대결에서 소련이 공산주의 세력을 도우면서 발생한 전쟁입니다.

 

(이것은 정말 간단하게 이 전쟁의 원인을 축약한 것이기에 자세한 경과가 궁금하신 분들은 위키피디아의 소련-아프간 전쟁 항목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자 지금도 유명한 미국의 외교 전문가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아프간이 소련의 베트남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소련이 북베트남군을 도왔듯, 아프간의 무자헤딘을 지원했습니다. 미국 외에도 많은 서방국가들이 아프간의 무자헤딘을 돕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게릴라전 양상을 띠자 소련이 입은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징병제를 택하고 있었는데, 10년간 장기화된 전쟁에서 지친 소련의 젊은이들이 염세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고, 소련의 암시장에선 체제를 비판하는 음악 레코드판이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에 대한 염세주의적 경향은 당장에 눈에 보이는 돈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국가 유지의 전체적인 방향에선 대미지를 줄 수밖에 없죠.

 

*지금은 기밀 조치로 공개된 CIA의 당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해서 치른 비용은 약 500억 달러 정도로 평가됩니다.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cia 웹사이트 링크를)

(https://www.cia.gov/readingroom/docs/DOC_0000499320.pdf)

 

이 액수는 지금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전쟁의 기간이었던 1980년대 소련 경제사정이 체르노빌 사건이나, 저유가 시대로 좋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 충격이 컸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4.1980년대의 세계적인 저유가 현상


(사진=픽사 베이 모스크바의 모습 https://pixabay.com/images/id-1556561/)

 

소련경제는 경제학자들 마다 평가는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1970년대까지는 그럭저럭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의 여러 가지 모순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넓은 땅과 2억 9천만에 달하는 인구, 부존자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현재 러시아의 전신인 나라인데, 현재 러시아도 세계적인 산유국이듯이 이 시절 소련도 상당한 규모의 산유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에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세계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대거 늘렸고, 그 결과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으로 위기감을 느낀 미국 등 산유국들이 석유 시추와 탐사를 늘려 석유 생산량이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저유가의 힘을 입은 이른바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으로 큰 혜택을 보았지만, 원유를 파는 입장인

 

소련 같은 나라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소련으로서는 하필이면 저유가 현상이 시작되던 1980년대 중반에 위에 언급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발표한 스타워즈 계획은 소련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소련이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소련의 몰락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한 국가나 기업의 몰락이 어떤 한 가지 요인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몰락은 겉으로 보기에는 외부의 충격으로 무너진 것 같지만, 이미 체제 내부에 내재되어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와

 

외부적 충격이 함께 만나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러시아는 소련 몰락의 아픔을 딛고 지구촌의 일원으로 복귀했습니다. 

 

러시아는 얼마 전 자국의 우수한 코로나 백신인 스푸트니크 V를 유엔 아동기금인 유니세프에 공급하기로 합의하는 등 지구촌의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사이도 소련 해체 이후 많이 가까워지는 등 시대는 많이 변했지요 :) 

 

아시아의 여러 이웃나라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보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